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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장기요양보험, 지금 방식으로는 유지 못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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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22 20:39: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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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 살고 있는 노인 L씨(78세)는 지난 연말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8개월 째 보행은커녕 대소변도 가리지 못해 집 근처 노인요양원에 입원해 있다. 슬하에 2남 2녀를 두고 있지만 자녀들 모두 타 지역에서 맞벌이를 하며 살고 있는 데다 부인 H씨(74세)도 고령인 탓에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는 남편 L씨를 돌보기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없었다면 자녀들 중 한 집에서 맞벌이를 포기하고 몸이 불편한 노부모를 모시거나 고령인 부인 H씨가 대소변까지 받아내며 L씨를 돌봐야 했겠지만 그나마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있어 한시름 덜 수 있게 됐다.
급성기 질환과 달리 치매, 중풍 등 노인성 질환의 경우 혼자 밥을 먹을 수도, 대소변을 가릴 수도 없는 생활이 장기적으로 지속되기 때문에 가족 중에 환자를 돌볼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경우 생계까지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적지 않다. 그러나 지난 2008년 도입된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로 치매나 중풍, 파킨슨병 등 노인성 질환으로 거동이 불편한 노인에 대한 수발 부담이 크게 줄어들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지난 5월 ‘유니온리서치’에 의뢰, 노인장기요양보험 수급자의 보호자 93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서비스 만족도·인식도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8.5%가 현 제도에 만족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서비스 이용 후 보호자의 부양부담 감소’를 묻는 질문에 92.7%가 ‘부양부담이 줄었다’고 답했으며, 75.7%가 ‘요양환경이 개선됐다’, 92.0%는 ‘자녀양육, 가족생활, 취미생활, 친구와 만남 등 사회적 활동에 도움이 됐다’고 답했다.
하지만 응답자들은 노인장기요양보험의 개선 과제로 ‘장기요양 인정등급 확대(24.5%)’를 꼽았다. ‘치매노인 등급판정기준 완화(19.1%)’, ‘노인성 질환 인정범위 확대(11.9%)’ 등을 포함하면 수혜자를 확대하라는 의견이 전체의 55.5%에 달했다.
재정규모 고려해 수혜자 확대속도 조절 필요
그러나 시행된 지 5년이 지난 노인장기요양보험의 수혜자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보험재정의 건전성을 확보하고 급속한 고령화에 대비한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재정확보 방안이 먼저 마련돼야 한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의 재정은 장기요양보험료(월보수액×건강보험료율(5.89%)×장기요양보험료율(6.55%))과 국가지원금(보험료 예상수입액의 20%)으로 구성되며, 2012년 예산은 총 3조4,706억원이다. 건강보험료 인상률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매년 3,000억원 이상씩 보험료 수입이 증가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말 5.8%(34만1,788명)인 노인장기요양보험 보장률을 올 연말까지 10%(38만9,000명)로 확대하기로 하고 지난 7월 수혜대상 3등급 인정기준을 53점에서 51점으로 낮췄다. 점차적으로 노인장기요양보험 보장률을 12∼15%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방침이며 현재 확대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노인장기요양보험 재정이 현재는 안정적이더라도 우리나라의 급속한 노령화 속도를 고려했을 때 빠른 속도로 재정고갈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며 안정적인 재정확보 대책을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정형선 교수는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는 전세계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빠르기 때문에 수혜자 확대 요구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며 “이러한 요구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재정이 필요하다. 자칫 잘못하면 노인장기요양보험 재정부족으로 인한 위기가 건강보험재정 전체의 위기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정 교수는 또 “현재의 노인장기요양보험료 수익구조만으로는 향후 필요한 재정을 안정적으로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할 수 없다”면서 “정부 지원 비율을 높인다든지 아니면 별도의 재정확보 방안을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노인장기요양보험 수혜자 확대 결정은 재정상황 등 제반여건을 포괄적이고 세밀하게 검토한 후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노인장기요양보험 재정 누수를 막아라
전문가들은 또 노인장기요양보험 수혜자 확대에 앞서 보험재정이 불필요한 곳에 사용되지 않도록 누수를 막는 것도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공단에 따르면 2013년 6월 30일 기준 노인장기요양보험 신청자는 66만3,376명이며, 이 가운데 35만5,727명이 혜택을 받고 있다. 장기요양기관은 전국적으로 2013년 8월 현재 시설 (노인요양원)의 경우 4,581곳, 방문목욕, 방문간호 등 재가급여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 1만1,114곳 등 총 1만5,695곳이다.
이는 노인장기요양보험이 도입된 지난 2008년 4,562곳(시설 1,271곳, 재가 3,291곳) 보다 4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장기요양서비스를 제공하는 요양기관이 크게 증가하다보니 요양시설 및 재가급여 서비스를 제공하는 요양보호사들의 불법·부당행위들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공단이 지난 2009년부터 올해 4월말까지 실시한 장기요양기관에 대한 현지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 장기요양기관 8,221곳 중 64.1%에 해당하는 5,271곳이 불법·부당행위를 저지르다 적발됐다.
상당수 장기요양기관들이 시설 특성 및 규모별로 필요한 요양보호사, 사회복지사 등의 인력을 배치하지 않고서 배치한 것처럼 속이다 적발됐으며, 요양보호사의 근무시간을 거짓으로 늘리고 방문요양, 목욕 서비스 제공 일수를 부풀리는 수법으로 부당하게 급여를 챙겨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기간 동안 이들 장기요양기관들이 벌어들인 부당이득금만 해도 총 381억1,900만원에 달했다.
이와 관련 경성대 사회복지학과 김수영 교수는 “4,000여개의 요양시설과 1만여개의 재가요양시설이 난립하고 있는 상황이 요양서비스의 과잉공급 현상을 낳고 있다”며 “이는 환자 확보를 위한 과다경쟁과 가격경쟁으로 이어져 요양시설에 종사하는 인력들의 인건비 감소와 인력 질 저하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권순만 교수는 “장기요양기관들의 불법·부당행위는 노인장기요양보험의 신뢰성과 수혜자 확대에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면서 “장기요양 공급자가 넘쳐나면서 벌어지는 수요 유인행위를 근절하고 공급자별로 다른 서비스를 표준화, 전문화해야만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제대로 뿌리내리고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림의대 가정의학과 윤종률 교수는 “요양시설간 시설격차 해소 등 정비, 재가서비스 기관 확대 및 제공 서비스 질 확보, 요양보호사의 자격수준 강화 등을 통해 전체적인 요양서비스의 질을 확보하는 방안을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인증제 도입·공공성 강화 등이 해결책
일각에서는 또 장기요양 서비스 질 향상을 위해 관리감독기관인 공단의 현지조사를 강화하는 동시에 장기요양 서비스기관에 대한 인증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현재는 장기요양기관 인정여부를 서류심사만으로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서류상 신고한 내용과 실제 현장에서 제공되는 서비스 수준이 차이가 나더라도 사실상 확인할 방법이 전무하다.
이에 대해 정형선 교수는 “현재 공단에서 장기요양기관에 대해 부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현지조사를 정기적으로 시행하고 그 횟수를 늘려 보다 적극적으로 장기요양기관들을 계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수영 교수는 보다 적극적인 대안을 제안했다. 김 교수는 먼저 “장기요양기관들을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는 게 질 관리를 어렵게 하는 요소”라면서 “인증제 도입 등 장기요양기관을 대상으로 하는 인증시스템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의 공공성을 보다 강화해 서비스 질 관리와 불법·부당행위를 근절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전국사회보험노동조합은 최근 ‘노인장기요양보험 시행 5년을 맞아 공공성 기반의 질적 성장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 “노인장기요양보험의 만족도가 높아지고 있지만 인력부족과 부당수급 문제는 심각한 상황”이라며 “땜질 처방식 문제해결보다는 공공기관만이 운영할 수 있도록 설립을 규제하는 한편, 이에 상응하는 적정한 운영 및 서비스 질 기준을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장기요양기관들의 허위과장 진술에도 등급을 변경할 수 없는 법체계, 분절된 급여체계, 가족요양에 의한 허위부당청구, 서비스의 질을 확인할 수 없는 이용체계, 인정확대에 따른 과중한 업무 등이 제도 발전을 저해하는 심각한 문제”라며 “모든 문제의 출발은 장기요양기관을 민간자본 중심으로 운영하도록 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공공기관이 장기요양기관을 직접 운영토록 해 장기요양서비스의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민영장기요양기관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질 향상을 견인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이같은 주장을 반영한 입법활동도 진행되고 있다. 최근 민주당 남윤인순 의원은 장기요양기관을 설치·운영할 수 있는 사람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장기요양법인으로 하는 ‘노인장기요양보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남윤 의원은 개정안을 통해 장기요양법인이 설치·운영하는 장기요양기관의 개설방식을 현행 지정·신고제에서 허가제로 변경하도록 했다. 특히 공단이 장기요양인정 전에 미리 표준장기요양이용계획서를 작성한 후 등급판정위원회가 이를 심의하도록 해 표준장기요양이용계획서의 실효성도 높이도록 했다.
캐어매니저 도입 통해 요양서비스 효율화
일본의 경우 개호보험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개호 서비스가 필요한지 여부를 인정받아야 한다. 개호 서비스가 필요한지 여부는 시정촌 직원 또는 개호지원 전문가인 케어매니저(Care Manager)가 신청 가정을 방문, 서비스 대상자의 심신 상태 등을 일차적으로 조사한 뒤 주치의 의견서를 바탕으로 개호인정심사회에서 이를 최종 판정하게 되는데, 이는 수급자가 공단에 등급판정 신청을 하면 공단 장기요양등급판정위원회에서 가정을 방문, 심사 후 등급을 결정하는 시스템과 대체로 유사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경우 전문적인 케어매니지먼트 기능이 미약해 욕구사정(needs assessments), 케어플랜 기능이 취약하고, 장기요양서비스의 다양한 욕구에 대응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공단의 표준장기요양이용계획서와 장기요양기관의 서비스계획 작성기능의 이원화로 서비스의 효과성 문제, 중복, 누락이 우려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연세대 정형선 교수도 케어매니저의 제도화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 교수는 “현재 공단 직원들이 대신하고 있는 요양서비스에 대한 기획·관리 역할을 별도의 전문가들을 양성해 분리함으로써 보다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노인요양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케어매니저를 제도화하면 ▲대상노인의 서비스 접근성 유리 ▲지역사회의 네트워크 구축으로 다양한 자원 활용 유리 ▲예방사업의 연계로 재정절약에 크게 기여 ▲보건의료서비스와 사회복지서비스의 연계 통합 유리 등의 효과가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시설서비스’→‘재가서비스’로 전환해야
한편, 제도 시행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도 중요하지만 노인인구의 급속한 증가에 대비, 근본적인 재정절감 방안 마련도 절실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연세대 정형선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노인환자들이 노인장기요양보험 수혜자로 판정받지 못해 요양병원이라는 특수시설에 입원하는 특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노인장기요양보험 재정 안정 수준에 따라 수혜자를 늘려가는 동시에 요양병원과 요양시설에 입원하는 환자들을 재가서비스로 전환해 관리하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이를 위해서는 노인의료전달체계가 체계적으로 확립돼야 한다”면서 “노인의료전달체계 마련을 통해 재가노인지원서비스, 간병서비스 등이 확대된다면 보다 적은 비용으로 보다 많은 노인환자들이 필요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장기요양기관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재가요양시설과 재가서비스로 전환해 노인의료비 절감에 성공한 스웨덴을 사례로 들었다.
정 교수는 “스웨덴에서는 일찍이 특수시설이나 양로시설에 있는 노인들을 가정으로 이동시켜 노인들의 재가(가정)간호 관리 비율을 높임으로써 의료기관이나 요양보호시설을 운영하는 비용을 줄여 왔다”며 “현재는 65세 노령자 중 5%만이 시설에 거주하고 있고, 그 효과로 최근 10년간 총 병상 수와 환자 당 입원기간, 평균 치료기간 등도 크게 줄었다”고 설명했다.
지난 6월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2013 국제 노인의료 심포지엄’에 참석한 스웨덴 룬드대학 보건과학연구소 스테판 칼슨 교수도 “스웨덴을 포함한 유럽 국가들의 노인의료서비스 제공 기본원칙은 노인들이 재가서비스를 받는 비율을 확대하는 것”이라며 “이 원칙에 따라 주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인 ‘코뮌’은 자신의 집에 거주하는 노인들의 건강관리를 위해 필요한 의료장비 및 시설을 구비해 주고 주간간병서비스, 방문진료서비스, 재가도우미서비스, 교통지원서비스, 청소 및 세탁서비스 등을 무상으로 제공한다. 심지어 식사배달 서비스는 물론 쇼핑이나 외출 시 개인도우미서비스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칼슨 교수는 또 “요양시설이나 그룹 홈 같은 곳에 입소치료가 불가피한 치매환자들의 경우 입소기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필요한 치료가 끝나면 가정으로 돌려보내 가정에서 재활치료를 받도록 하기 때문에 가정재활 사업은 앞으로도 꾸준히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는 5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비교적 안정적으로 정착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급속한 고령화 속도를 감안하면 짧은 시간과 적은 비용으로 제도가 정착됐다고 기뻐하기보다 그동안 제기된, 그리고 앞으로 발생할 문제들에 대해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과 세계 최고 수준의 고령화 속도라는 난제를 해결할 노인의료정책 마련이 미래 우리나라의 안정적 성장의 단단한 기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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