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에 사는 A씨는 초기치매와 당뇨합병증을 앓고 있는 72세의 어머니를 가정에서 돌봐오다 지난해 어머니에 대한 노인장기요양보험 급여신청을 했다. A씨의 어머니는 등급판정 결과, 2등급 판정을 받았다. A씨는 어머니를 요양기관에 입소시키기 위해 집 근처의 요양시설들을 모두 둘러봤지만 마땅한 시설을 찾지 못했다. 대부분의 시설들이 규모가 너무 작은 데다 위생 및 안전시설 또한 미흡했기 때문이다.
A씨는 “어머니를 시설에 모시기 위해 여러 곳을 찾아 돌아다녔지만 마음에 드는 곳을 찾지 못했다”며 “요양보호사들이 유니폼도 입지 않고 손도 제대로 씻지 않은 상태에서 여러 환자들을 돌보더라. 안전 및 소방시설 등도 미흡해 어머니를 도저히 믿고 맡길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A씨는 결국 집에서 시설에 어머니를 모시고 자주 면회하려고 했던 당초 계획을 포기했다. 그리고 집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시설에 어머니를 입소시키기로 결정했다. 입원실당 3∼5명씩 총 150여 명의 노인환자를 수용하고 있는 시설은 입원실 안에 화장실도 있고 요양보호사와 간호조무사도 적절히 배치돼 있는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설립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위생적이고 안전바 등 안전시설과 소방시설들도 잘 갖춰져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시행된 지 5년이 됐지만 요양시설의 질 낮은 요양보호사 채용 등 인력문제와 미흡한 안전 및 소방설비 등 시설문제가 여전히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입소자나 보호자들 사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높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지만 쉽사리 문제가 개선되고 있지 않다.
국내 유명 포털사이트인 네이버와 다음의 ‘노인장기요양보험’ 관련 까페에서는 A씨와 유사한 경험을 했다는 내용의 게시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네이버 까페에서 만난 한명의 보호자는 “요양보호사 1인당 3∼5명의 환자를 관리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알고 있는데 아버지가 입소한 시설에서는 요양보호사 한 명이 7인실 두 개씩을 관리하고 있었다”며 “그러다보니 요양보호사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식사수발 정도가 전부다. 그리고 요양보호사들 대부분이 조선족들이어서 보호자들과도 의사소통도 잘 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언어능력과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노인환자들과 요양보호사들이 어떻게 제대로 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겠냐”며 “결국 아버지를 다른 시설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고 한숨지었다.
다음 까페에서 만난 또다른 환자의 보호자는 “치매환자들을 침대에 결박해놓고 관리하는 시설도 봤다. 시설에서는 치매환자를 결박하지 않으면 사고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설명했지만 왠지 마음이 씁쓸하다”고 전했다.
보다 심각한 사례도 있었다. 90대 어머니를 대구의 한 요양시설에 입소시켰었다는 한 보호자는 “시설로부터 어머니가 실수로 넘어져 골절상을 입었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가보니 대퇴부 골절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어머니가 다른 환자와 다툼이 벌어져 승강이를 하는 과정에서 다쳤다는 것을 알게 됐다”면서 “시설의 환자관리 상태를 더 이상 신뢰할 수 없어서 어머니를 수술 후 다른 시설로 옮겼다”며 탄식했다.
영세시설, 높은 서비스 제공 여력 못돼
노인요양시설들이 요양보호사 1명당 정해져 있는 입소자 수를 초과해 운영하거나 안전설비 등 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는 이유는 대다수 요양시설들이 영세한 상태에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2013년 8월 현재 우리나라 요양시설은 1만1,138개(시설 4,587개, 재가 6,551개)이다. 입소자가 30명 미만인 시설은 시설의 경우 4,587개 가운데 3,218개에 달한다. 전체 요양시설 가운데 70.1%인 요양시설들이 대부분 소규모 시설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노인장기요양보험 시행 이후 한때 장기요양산업이 뜨는(?) 산업으로 각광 받기도 했지만 이 분야의 경영난이 가속화되면서 문을 닫는 시설이 속출하고 있다. 이는 상당수 요양시설들이 줄줄이 경매시장으로 넘어가고 있는 것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경기도청에 따르면 지난해 이 지역에서 경매에 넘겨진 요양시설은 총 35건이다. 그런데 올해는 7월말 현재 32건이나 된다. 문을 닫는 요양시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노인장기요양보험에서 인력 및 시설 기준만 충족할 경우 신고만 하면 요양원 등 요양시설을 설립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요양시설의 공급과잉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요양시설 가운데 본인부담금을 일부 할인해주는 등 저가경쟁이 과열되고 있고, 시설들이 저가경쟁에 나서다보면 요양보호사 등의 인력배치를 축소하고, 대체로 인건비가 저렴한 조선족으로 요양보호사를 채용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악순환은 입소자들에게 질 낮은 요양서비스를 제공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국민건강보험공단 한 관계자는 “수익성을 노린 민간업자들이 우후죽순으로 요양시설사업에 진입하면서 시설들의 공실률이 높아졌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저가경쟁에 나서다보니 경쟁에서 뒤쳐진 시설들이 문을 닫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특히 “이런 시설들이 질 높고 안정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기 어려운 실정이어서 그 피해가 고스란히 환자들에게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정형선 교수도 “요양시설들의 영세성은 제대로 된 시설은 물론 필요한 만큼의 요양보호사 등 서비스 인력을 확보하는 데도 저해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며 “필요한 인력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시설에서 어떻게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당근’과 ‘채찍’으로 시설개편 유도 해야
특히 전문가들은 대부분의 소규모 시설들이 요양시설로 건축된 곳이 아니라 일반상가 건물의 한 두 개 층을 임대해 운영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며 요양시설의 수준 향상을 위해서는 적절한 지원책과 제재가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장기요양보험 재정안정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요양시설들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적절히 지원하고, 회생 가능성이 없는 시설들은 과감하게 폐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한국장기요양학회 선우덕(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회장은 “공단에서 2년마다 요양시설 평가를 실시, A∼E등급까지 5개 등급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지난 2012년 평가에서 최하위 등급인 D등급과 E등급을 받은 요양시설이 30% 이상이었다”며 “그동안 요양시설의 위생 및 안전 기준이 어느 정도 완화됐음에도 불구하고 시설평가에서 최하점을 반복해서 받고 있다면 그 시설들은 시장에서 과감히 퇴출시킬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아울러 그는 “시설폐쇄 권한을 갖고 있는 지방자치단체가 여러 가지 이유로 권한을 행사하지 않고 있다”면서 “앞으로는 공단이 장기요양기관 평가 결과에 근거, 폐쇄대상 시설을 권고하면 지방자치단체가 그 의견을 존중해 해당시설들을 폐쇄토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는 “시설평가에서 상위 등급을 받은 요양시설의 경우 보험재정에 부담을 주지 않는 수준에서 지원을 해준다면 서비스 향상이 기대되는 시설들이 꽤 있을 것”이라며 “시행된 지 5년된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우리나라 5대 사회보험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당근과 채찍을 통해 장기요양 서비스의 질 향상을 꾀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수준미달’보호사도 서비스 향상 걸림돌
30명 미만의 소규모 시설이 전체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요양시설들의 영세성이 심각하다보니 필요한 인력을 확보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요양보호사 등 서비스 인력의 전문성 문제도 자주 도마 위에 오르내리고 있다. 요양보호사 등 서비스 인력의 전문성은 요양시설의 전반적인 서비스 질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요양보호사 자격을 취득한 사람은 100만명 이상으로 추계되고 있으며, 이들 중 약 23만명 정도가 요양시설에서 근무하고 있다. 일반인이 요양보호사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보건복지부령에 따라 시·도지사로부터 지정받은 요양보호사 교육기관에서 총 240시간의 표준교육과정을 이수하고, 요양보호사 자격시험(5지선다형 필기시험 40문항과 실기시험 40문항에서 60점 이상 획득)에 응시해 합격해야 한다. 간호사 등 관련 국가자격(면허)소지자의 경우는 40~50시간의 교육만 받아도 요양보호사 자격시험 응시자격이 부여되며, 경력자(경력인정기관에 따라 이수시간 다름)의 경우 별도의 교육과정을 이수하면 요양보호사 자격시험 응시자격이 부여된다.
요양보호사는 장기요양급여 수혜대상자 또는 장기요양급여 수급자가 아니더라도 복지대상자에게 ▲신체활동 및 일상생활활동서비스 ▲방문요양, 방문목욕, 주야간보호, 단기보호 등 시설 및 재가서비스 ▲식사, 목욕, 대·소변처리, 옷 갈아입히기, 이동, 욕창예방(체위교환), 간단한 재활훈련(산책, 병원동행, 보행훈련 등) 등 심리적 지원 및 기타 일상생활 관련 동작지원 서비스 ▲세탁, 물건사기, 식사준비 및 조리 지원, 은행일 등 업무 지원 등 수단적 일상생활동작(IADL) 지원 서비스 등을 제공하게 돼 있다. 수혜대상자나 보호자들이 일반적으로 인지하고 있는 서비스보다 상당히 다양하고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상당수의 관련 전문가들은 현재 일반인 기준 240시간의 교육과정이 요양보호사들이 담당하는 서비스 종류와 그 전문성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장기요양학회 선우덕 회장은 “국내에서는 요양보호사가 단순히 노인환자의 식사수발이나 대소변수발 정도를 수행하는 사람들로 그 역할과 기능이 과소평가되고 있다”면서 “선진국에서는 요양보호사를 간호사나 간호조무사에 버금가는 전문직으로 인식하고 철저한 교육을 통해 요양보호사를 양성하고 관리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울러 “현재 우리나라에서 요양보호사 양성을 위해 진행되고 있는 교육과 시험제도는 질 높은 전문요양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요양보호사를 양성하기에 역부족”이라고 지적했다.
보호사 교육 강화·보수교육 법제화 필요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요양시설에서 제공되는 서비스의 질 향상을 위해 시설 등의 경영환경 개선과 함께 요양보호사의 질적 수준 향상을 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독일의 경우 2∼3년 전문교육을 받은 사람들에 한해 요양보호사 자격시험 응시자격이 주어지며, 일본의 경우도 2년의 전문교육을 받아야만 요양보호사 자격시험을 볼 수 있다.
240시간의 교육을 이수하고 필기와 실기시험을 통과하면 요양보호사 자격이 주어지는 우리나라와 비교해 전문적인 교육이 이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욱이 학계에서는 요양보호사 교육기준의 강화를 촉구하고 있다.
연세대 정형선 교수는 “요양시설의 적절한 설비 확보와 적절한 교육을 받은 요양보호사의 양성은 장기요양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가장 기본적 요소”라면서 “현재의 요양보호사 교육기준이 일정부분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장기요양학회 선우덕 회장은 “현재 배출된 요양보호사가 100만명을 넘고 있지만 요양보호사들의 연령수준이 50∼60대로 지나치게 높고 교육수준이 낮아 업무이행 및 실행 능력이 떨어지고 있다”면서 “요양보호사 교육 및 자격기준을 강화함으로써 배출되는 요양보호사의 평균연령을 낮추는 것도 장기적으로 장기요양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자격 취득 후에도 지속적으로 보수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요양보호사단체들은 요양보호사에 대한 정기적 보수교육 의무화를 관련법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요양보호사단체들은 지난해 ‘한국요양보호사중앙회(회장 민소현)’를 결성하고 요양보호사 의무화를 골자로 한 ‘노인복지법’ 개정을 촉구한 바 있다.
요양보호사중앙회 민소현 회장은 “지난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 시행에 맞춰 노인복지법 시행규칙이 개정돼 국가자격증인 요양보호사를 양성하는 방안이 법제화 됐다. 이후 요양보호사단체들이 보수교육 의무화를 지침이 아닌 법으로 규정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아직까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면서 “보호사들의 처우개선을 위해서라도 요양보호사들의 질적 향상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보수교육 의무화 법제화가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